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티베리오스 3세 (문단 편집) === 최후 === 705년,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케르손에서 탈출해 불가르족과 슬라브족의 지원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했다. 유스티니아노스는 사흘 동안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에게 성문을 열라고 요구했으나 조롱과 야유만 받을 뿐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하자 성벽 아래에 오랫동안 버려진 수도관에 몇몇 병사들과 함께 들어가 황궁으로 잠입했다. 다음날 아침 황궁이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한 티베리오스는 비티니아로 달아났다. 706년 초, 티베리오스는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파견한 추격병에게 체포되어 콘스탄티노플로 끌려왔다. 그후 706년 2월 15일 자신이 지난날 폐위했던 레온티오스와 함께 원형 경기장을 한바퀴 돌며 시민들의 조롱을 받고 바닥에 엎드린 채 자신의 목이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발에 밟히는 수모를 겪었다. 그후 그는 형장에 끌려가 레온티오스와 함께 처형되었다. 얼마 후, 제국의 명장이었던 헤라클리오스는 티베리오스 3세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부하들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제국의 국방력은 약화되었고 이슬람 세력은 이틈을 타 제국의 많은 영토를 빼앗았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티베리오스의 아들 테오도시오스는 살아남아 [[에페수스]]의 주교가 되었으며, 후대 황제인 [[레온 3세]], [[콘스탄티노스 5세]] 부자와의 관계도 좋았다고 한다.[* 영어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Tiberius_III|Tiberius III]] 중, 'Tiberius had a son, Theodosius, who became bishop of Ephesus by 729, and presided over the Council of Hieria in 754, and was a confidant of Emperors Leo III (r. 717–741) and Constantine V (r. 741–775).'] 이 테오도시오스가 [[테오도시오스 3세]]와 동일인물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부정하는 주장 또한 있다.[* 영어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Tiberius_III|Tiberius III]] 중, 'Byzantine Historian Graham Sumner has suggested that this Theodosius may be the same person as later Emperor Theodosius III (r. 715–717). Sumner presents the evidence that both figures held the Bishopric of Ephesus at similar times: Emperor Theodosius became bishop after 716, according to the Chronicon Altinate et Gradense, and Theodosius the son of Tiberius became bishop by 729, suggesting they may be the same person. Byzantine historians Cyril Mango and Roger Scott do not view this theory as likely, as it would mean that Emperor Theodosius had to have lived for thirty more years after his abdication.']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